경기도 포천에는 산정호수가 있습니다.

주위의 웅장한 산들에 둘러싸인 그야말로 산속의 저수지입니다.

일제강점기 농사를 위하여 조성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관광지로 변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100대 관광명소에 드는 곳이죠.

 

산정호수 초입에는 주차장이 두 군에 있지요.

위에 있는 것은 상동주차장인데 138-6번 시내버스 종점이 있습니다.

한화리조트 앞에 있는 것이 하동주차장입니다.

상동주차장에서는 산정호수로 바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하동주차장에서는 제방으로 올라가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동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운치가 있죠.

제방 아래 캠핑장이 있고 폭포도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산정호수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있는데요.

이곳에는 궁예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산책로입니다.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공부도 되고요.

 

 

<산정호수 산책로 입구>

 

<진달래>

 

<궁예기마상>

 

제방까지 올라가면 저수지가 보입니다.

꽤 넓고 수량도 풍부합니다.

언제나 수량이 풍부한 것은 아닌데 올 봄에는 저수지를 가득 채웠네요.

겨울에 내린 눈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일 수도 있고

올 봄에는 제법 강수량도 많았으니까 상류에서 내려온 물인 모양입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오솔길입니다.

다정하게 걷기 좋은 연인의 길이라 해도 좋겠군요.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조각공원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상동주차장 아래에 닿습니다.

물놀이와 놀이공원시설도 이곳에 있죠.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옛 김일성 별장자리다>

 

<오솔길>

 

<궁예이야기>

 

<오른쪽으로 명성산이 보인다>

 

방향은 어디로 잡아야 할까요?

산정호수를 한 바퀴 도는 거리는 4km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무난하죠.

저는 웬만하면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목표를 삼습니다.

그래야 산정호수를 사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즐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보트장이나 놀이공원은 애써 외면하고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가는 곳마다 호수의 풍광이 다르니

즐거움도 배가됩니다.

허브야생화마을에 도착하면 간단하게 빵이나 음료, 커피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꽃구경도 가능하죠.

꼭 절반을 걸었기 때문에 쉬어가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생강나무꽃>

 

<농이공원>

 

<드리워진 나무>

 

<다정하게 걷는 사람들도 보고>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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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로 갑니다.

고려산 진달래축제를 보러 갑니다.

 

떠나기 전에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오자.

새벽같이 출발해야 오전 8시쯤 축제장에 도착할 수 있고

느긋하게 산행을 즐긴 후에는 12시쯤 돌아나와야

무시무시한 정체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

 

남들처럼 오전 10시쯤 출발하면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통정체를 만나게 되고

하루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조바심을 겪게 된다.

 

아침 8시쯤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몰려드는 차량들로

축제장은 북새통이다.

주차안내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자동차를 세우고

밀려드는 관광객들따라 이동을 시작한다.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 이상

코스는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강화역사박물관이 있는 고인돌광장에서 백련사를 거쳐

고려산 정상까지 전체거리는 3.7km,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왕복 3~4시간을 예상하면 되겟습니다.

 

물이 흘러가듯

사람들따라 고려산으로 이동.

행사요원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길잃을 염려는 없다.

백련사에서는 산사구경도 하고

정상에서는 도시락 까먹어야징~

 

<고인돌광장의 축제장>

 

<자동차들은 몰려들고>

 

<주민들의 판매장>

 

<고려산 가는 길>

 

<온통 축제분위기>

 

<산길로 접어들었다>

 

<고운자태를 뽐내는 진달래>

 

<정상가는 길은 멀져>

 

<드디어 능선상의 진달래구경>

 

<진달래 풍년일세>

 

<드디어 헬기장 도착>

 

<전망대>

 

<현수막도 보이고>

 

<진달래>

 

<고려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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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하늘길은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북악산 능선과 산자락을 이어서 만든 산책길을 말합니다. 이 구간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 소속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서 이용했던 길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42년 만에 개방된 곳이죠.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숲이 우거져 있고 자연생태계가 살아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북악산 하늘길은 5개의 코스가 얼기설기 엮어져 있습니다. 코스마다 제각각 다른 풍경과 전망들을 보여주며 매력을 뿜어내고 산책로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찔한 맛을 냅니다.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북악산 하늘길의 압권은 여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환상적인 조망일 텐데요. 2산책로의 서마루-계곡마루-남마루-하늘전망대나 3산책로의 동마루-숲속다리- 전망대에 서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서울의 너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어느 전망대에서 보느냐에 따라 산 이름만 달라질 뿐 모든 산자락은 힘차게 꿈틀거리고 서울의 경관은 입이 쩍벌어질 정도로 장관입니다.

 

산책로 즐기는 방법>

 

지하철 6호선 보문역 4번 출구로 나와서 1162번 버스로 환승 후 구민회관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성북구민회관입니다. 성북구민회관 옆길로 약 300m를 들어가서 좌회전하면 입구가 나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성북01 마을버스로 환승 후 구민회관201동앞 정류장에서 하차합니다. 성북구민회관 옆길로 약 300m 들어가서 좌회전하면 역시 입구가 나옵니다.

 

 

<성북01 마을버스>

 

<계단길>

 

<성북구민회관>

 

<성북근린공원>

 

<개나리>

 

<조망지>

 

<제비꽃>

 

<하이킹족>

 

<벚꽃>

 

<진달래>

 

<4월의 진달래>

 

<조망지>

 

<북악산 하늘길에서>

 

북악산 하늘길 정보>

 

걷는구간 : 성북공원 하늘한마당~우정의 공원

걷는거리 : 4km

소요시간 : 1시간 30분

추천시기 : 봄, 가을

난이도 : 중급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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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도 봄이 왔네요.

남부지방은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던데 비하면

서울은 조금 늦는 편이지요.

 

그런데 남산공원에 올라가니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겁니다.

개나리는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렸고

진달래도 그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네요.

 

봄이 오면 우리의 산하는 어디를 가나

봄풍경이 장관입니다.

집근처 아무 곳이나 나가보면

산기슭에서 생강나무의 노란꽃을 만날 수 있고

나무들은 물이 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죠.

 

기온이 오르고 날씨가 화창하니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남산에는 둘레길이 있거든요.

원래는 자동차길이었지만 이젠 오로지

사람들을 위한 도보길로 조성한 곳.

넓은 길은 사람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길을 달리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자세히 보니 장애인입니다.

한 사람은 정상인이고 또 한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네요. 그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달리고 있습니다.

 

 

<남산공원>

 

<개나리>

 

<남산공원안내센터>

 

<남산둘레길 시작>

 

<봄풍경>

 

<길을 걷는 사람들>

 

<개나리>

 

<봄이 오긴 왔네>

 

<달리는 사람들>

 

<개나리와 진달래>

 

<진달래꽃>

 

<산책로 풍경>

 

<남산타워>

 

<화창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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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는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에 있습니다.

도로명주소는 종로구 우정국로 55 인데요.

우리나라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대표사찰입니다.

 

1910년 한용운 등이 주축이 되어 세운 각황사가 1938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쳐 태고사로 불렸고

1954년 일제의 잔재를 제거하는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현재의 이름으로 자리잡았죠.

조계라는 명칭은 중국 선불교의 6대 조사로 꼽히며 수행의 지표로 추앙받는 혜능대사가 머물렀던 조계산에서 가져왔다고 하네요.

 

조계사의 중심건물은 대웅전입니다.

태고사 중건 당시 전북 정읍의 사찰 건물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커다란 기둥이 고풍스러운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앞마당에 위치한 7층석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고

500년 수령의 백송과 400년의 회화나무가 대웅전 건물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습니다.

2006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건축의 잔재를 털어내고

일주문 등 사찰의 위용을 제대로 갖추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면 사찰을 찾는 수많은 신도들과

잔잔한 불경소리, 은은한 향내음으로 서울도심거리에 부처님의 자비를 알립니다.

조계종 총본산 건물 주변으로 사찰음식점과 찻집,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어우러져 불교의 거리를 만들죠. 함께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은 전국 사찰에서 보관하기 어려운 불교문화재가 관리 전시되는 곳으로 진귀한 한국불교미술의 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계사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업무가 시작된 우정총국이 있죠.

옛 전의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우정총국은 고종의 명에 의해 해외를 시찰하고 온 홍영식의 건의로 1884년에 세워졌습니다. 개업축하연 자리에서 벌어진 그 유명한 갑신정변에 의해 업무는 중단되었고 1895년 우체사가 설립되기 전 10년 동안은 다시 옛날통신방법인 역참이 이용되었다 합니다. 원래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건물 한 동으로 사적 제213호로 지정되어 체신기념관으로 사용 중에 있네요.

 

 

<조계사 안내문>

 

<조계사 일주문>

 

<경내>

 

<담소>

 

<기도>

 

<만사형통>

 

<조형물>

 

<탑>

 

<석등>

 

<문살>

 

<신발장>

 

<우정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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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골공원은 종로에 있는 서울시 최초의 근대식 공원입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봉화의 불이 붙은 유서깊은 장소이죠.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세조때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죠. 그러면서 중건하였는데 도성안에서는 제일가는 가람으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성종때에 억불정책으로 바뀌자 연산군때는 장악원이라는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기관을 두기도 했는데 이후로 원각사의 재목을 헐어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사찰건물은 자취를 감추고 비와 10층석탑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에게는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이라 불렸으며 이곳을 공원으로 설계하여 꾸미도록 건의한 영국인 브라운이 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에서 파고다공원이라 하였으며 탑골공원이 된 것입니다. 탑골공원이 언제 공원으로 개설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파고다공원이 이 땅에 최초의 공원이고 1897년 브라운의 건의에 의하여 꾸며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에 와서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공원의 관리권도 총독부에 넘어갔고 벚나무와 상록수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의 공원경내에는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과 보물 제3호인 원각사비가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3.1운동의 대표자 손병희의 동상과 1966년에 제막한 높이 10m의 3.1운동을 묘사한 부조등이 있죠. 한때는 시설훼손을 염려하여 유료공원으로 바뀌어 관리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 시민의 휴식을 위하여 무료로 개방되었고 지금은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파고다공원으로 부리던 것이 1991년부터는 탑골공원으로 명칭을 확정하였으며 2011년 7월 28일 서울 탑골공원으롤 명칭이 변경되었지요. 

 

 

<탑골공원의 정문 삼일문>

 

<탑골공원 안내도>

 

 

<손병희 선생상>

 

 

<공원내부>

 

<3.1운동 부조>

 

<원각사지10층석탑>

 

<팔각정>

 

 

<지금은 시민의 휴식처>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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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출렁다리는 2018년 1월 11일에 개통되었다고 하는군요.

모처럼 기온이 높은 3월의 주말에 원주시 지정면으로 향합니다.

영동2고속도로 동양평IC에서 빠져나가 간현관광지로 10여 분 달립니다.

간현관광지 주변은 소금산 출렁다리를 찾아온 관광객들로 임시주차장까지 자동차들이 가득합니다.

 

긴 행렬을 따라 30분정도 이동합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소금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500m의 소금산 중턱을 향하여 계단길을 올라갑니다.

체력이 꽤 필요한데요.

 

설연휴 이전에 이미 방문객수 20만명을 돌파하고 3월이 되기도 전에 30만명을 넘어선

소금산 출렁다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단한 인파입니다. 시골 한적한 동네가 출렁다리 하나로 아주 북새통입니다.

애초 목표로 했던 연간 방문객 300만명은 거뜬히 넘어설 전망이라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올 7월부터는 입장료 3000원을 받기로 했답니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산에 설치된 것 중에는 가장 길다는 200m 길이에 폭 1.5m, 높이 100m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니 출렁다리가 흔들거립니다. 그래서 더 아찔한 느낌인데요.

바닥은 아래가 내려다보이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찾기 쉽다는 점과 MBC 무한도전에 나왔다는 점 때문에

그야말로 인기폭발입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피하여 평일에 방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소금산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으로 높이는 343m입니다.

 

 

<임시주차장>

 

<출렁다리 가는 행렬>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이정표>

 

<출렁다리 아래>

 

<전망대>

 

<출렁다리 아래 풍경>

 

<출렁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정체>

 

<소나무>

 

<소금산 출렁다리의 인기를 실감나게 한다>

 

<관광객>

 

<올려다본 모습>

 

<당겨본 모습>

 

<간현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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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 광진구 능동에 있습니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장을 하였다고 하니 역사가 꽤 오래되었네요. 넓은 공간속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동산 및 다양한 공연시설과 체험공간이 가득하여 어린이를 위한 가족테마공원으로는 최곱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입장하는 방법은 정문과 후문 두 곳이 가능한데요. 서울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고 나가면 정문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4번출구로 나가면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죠.

 

  이곳의 원래이름은 유강원이었습니다. 흔히 유릉터라고 불렀는데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이 지역의 이름도 능동입니다. 유릉터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 순명황후 민씨의 능터로서 1904년에 승하하자 이곳에 장사하였다가 1926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 순종의 능옆에 합장하였지요. 그뒤에 유릉터라는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1930년대부터 최초의 골프장으로 개발되어 1960년대까지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위치가 너무 도심과 가까울 뿐더러 당시만 해도 골프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아서 너무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비난도 있었지요.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장을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대공원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 1970년의 일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원의 조성공사를 기공한 것은 1972년 11월의 일이고 이른바 100일 작전이라는 불철주야의 강행군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시가 벌인 공사중에서 지하철 건설 다음가는 대단한 공사였다고 하네요. 1973년 5월 5일 제51회 어린이날을 맞추어 성대하게 준공식을 가졌으며 그날 오후 무료 개장 때는 30만명의 시민과 어린이가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불편해진 시설들에 대하여 리모델링을 실시하였고 2009년 5월 5일에는 새로운 공원으로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대공원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등이 있는데 날씨가 추워서 식물원으로 들어갑니다. 식물원 안에는 봄꽃과 여름나무들이 가득한데 꽃을 피우고 있어 또다른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죠.

 

<어린이대공원후문>

 

<은행나무길>

 

<어린이대공원 안내도>

 

<놀이시설>

 

<팔각당>

 

<식물원>

 

 

<새우풀>

 

 

<귤나무>

 

 

<얼룩자주달개비>

 

<군자란>

 

 

<실내정원>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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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입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1418년에 살아있는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서 지은 궁이었죠. 그리고 시간은 흘러 성종 때인 1482년에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게 됩니다. 대비전의 세 어른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요 전각을 완공하여 이름도 창경궁이 됩니다.

 

  그러나 창경궁의 운명은 일제에 의하여 무참히 훼손됩니다. 일제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개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킵니다.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 놓았죠.

 

  일반인에게 개방된 창경궁은 해방후에도 1970년대까지 줄곧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창경원 벚꽃놀이 한번 못해본 사람은 낭만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없는 시절도 있었죠. 그러나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공사는 198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일본이 고의적으로 심어 놓았던 벚나무도 뽑아내었죠.

 

  그 당시에 만들었던 식물원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추위가 유난했던 올겨울, 창경궁을 찾았더니 찬바람만 씽씽 불고 기온은 좀체로 오르지 않았죠. 그래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식물원으로 향했는데 식물원내부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봄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던 겁니다. 따뜻하기도 했지만 봄꽃들이 너무 반가워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바빴는데 저도 그 중에서 여러 장면을 찍어가지고 왔네요.

 

 

<명정문>

 

<창경궁의 넓은터>

 

<춘당지>

 

<창경궁 대온실>

 

<영춘화>

 

<동백나무꽃>

 

<창경궁 소철>

 

<복수초>

 

<극락조화>

 

<속새>

 

<진달래꽃>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대온실>

 

<다시 겨울로 나선다>

 

<창경궁의 전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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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정문이었습니다. 조선 태조 5년인 1396년에 창건되었으며 세종 때 지대가 낮아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새롭게 개축하였읍니다. 그 후에도 성종 때 문이 기우는 바람에 대규모의 중수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에도 손상을 입지 않고 500년을 견디어왔죠. 그 다음으로 수리한 것은 광복후 1962년인데 이때는 대대적으로 해체 수리를 단행했습니다.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피해가 심했기 때문인데 이때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 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모두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복원하였다 합니다. 그러니까 숭례문은 조선초기에 세운 매우 드문 소중한 건물입니다.

 

  숭례문은 화강암을 바른층쌓기로 다듬어 쌓아올리면서 중앙부에 홍예문을 낸 석축기단 위에다가 문을 얹었지요. 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중층 우진각지붕 다포식입니다. 건물 2층의 한가운데 崇禮門이라고 세로로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글씨를 세로로 쓴 까닭은 禮자가 오행에서 화(火)에 해당하므로 崇禮의 두 글자는 불꽃을 의미하며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전해옵니다. 글씨는 충녕대군(후일의 세종)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준 양녕대군이 썼다고 하지만 여러가지 이설이 있습니다. 처마는 상하층 모두 겹처마이고 추녀마루 위에는 잡상과 용두를 올려놓았습니다. 1962년 해체 수리 당시 발견된 명문에 의하면 원래 지붕은 팔작지붕이었는데 뒷날 우진각지붕으로 바뀐 것이라 합니다.

 

  숭례문은 현존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큽니다. 건축사적으로 건립연대가 확실한 조선초기의 건물이며 공포의 구성이나 기법이 고려 말이래 초기 다포계 건물의 특색을 잘 간직하고 있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숭례문은 옛날의 그 숭례문이 아닙니다. 그 옛날 성벽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도성 정문의 위용을 자랑하던 숭례문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헐려나간 성벽자리는 자동차의 물결과 고층건물이 대신 차지하고 있으며 문은 늘 열려 있으나 관광용으로만 이용할 뿐입니다.

 

 

<숭례문>

 

<국보제1호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의 글씨는 세로로 쓰여 풍수지리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홍예문>

 

<왼쪽 성벽>

 

<오른쪽 성벽>

 

<서울역 방향의 도심>

 

<숭례문 화재이후 새롭게 단장되었다>

 

<숭례문 주변거리>

 

<남산 방향의 성벽>

 

<공중전화>

 

<소나무와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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