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은 종로에 있는 서울시 최초의 근대식 공원입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봉화의 불이 붙은 유서깊은 장소이죠.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세조때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죠. 그러면서 중건하였는데 도성안에서는 제일가는 가람으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성종때에 억불정책으로 바뀌자 연산군때는 장악원이라는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기관을 두기도 했는데 이후로 원각사의 재목을 헐어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사찰건물은 자취를 감추고 비와 10층석탑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에게는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이라 불렸으며 이곳을 공원으로 설계하여 꾸미도록 건의한 영국인 브라운이 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에서 파고다공원이라 하였으며 탑골공원이 된 것입니다. 탑골공원이 언제 공원으로 개설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파고다공원이 이 땅에 최초의 공원이고 1897년 브라운의 건의에 의하여 꾸며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에 와서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공원의 관리권도 총독부에 넘어갔고 벚나무와 상록수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의 공원경내에는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과 보물 제3호인 원각사비가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3.1운동의 대표자 손병희의 동상과 1966년에 제막한 높이 10m의 3.1운동을 묘사한 부조등이 있죠. 한때는 시설훼손을 염려하여 유료공원으로 바뀌어 관리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 시민의 휴식을 위하여 무료로 개방되었고 지금은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파고다공원으로 부리던 것이 1991년부터는 탑골공원으로 명칭을 확정하였으며 2011년 7월 28일 서울 탑골공원으롤 명칭이 변경되었지요. 

 

 

<탑골공원의 정문 삼일문>

 

<탑골공원 안내도>

 

 

<손병희 선생상>

 

 

<공원내부>

 

<3.1운동 부조>

 

<원각사지10층석탑>

 

<팔각정>

 

 

<지금은 시민의 휴식처>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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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 광진구 능동에 있습니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장을 하였다고 하니 역사가 꽤 오래되었네요. 넓은 공간속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동산 및 다양한 공연시설과 체험공간이 가득하여 어린이를 위한 가족테마공원으로는 최곱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입장하는 방법은 정문과 후문 두 곳이 가능한데요. 서울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고 나가면 정문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4번출구로 나가면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죠.

 

  이곳의 원래이름은 유강원이었습니다. 흔히 유릉터라고 불렀는데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이 지역의 이름도 능동입니다. 유릉터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 순명황후 민씨의 능터로서 1904년에 승하하자 이곳에 장사하였다가 1926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 순종의 능옆에 합장하였지요. 그뒤에 유릉터라는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1930년대부터 최초의 골프장으로 개발되어 1960년대까지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위치가 너무 도심과 가까울 뿐더러 당시만 해도 골프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아서 너무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비난도 있었지요.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장을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대공원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 1970년의 일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원의 조성공사를 기공한 것은 1972년 11월의 일이고 이른바 100일 작전이라는 불철주야의 강행군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시가 벌인 공사중에서 지하철 건설 다음가는 대단한 공사였다고 하네요. 1973년 5월 5일 제51회 어린이날을 맞추어 성대하게 준공식을 가졌으며 그날 오후 무료 개장 때는 30만명의 시민과 어린이가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불편해진 시설들에 대하여 리모델링을 실시하였고 2009년 5월 5일에는 새로운 공원으로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대공원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등이 있는데 날씨가 추워서 식물원으로 들어갑니다. 식물원 안에는 봄꽃과 여름나무들이 가득한데 꽃을 피우고 있어 또다른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죠.

 

<어린이대공원후문>

 

<은행나무길>

 

<어린이대공원 안내도>

 

<놀이시설>

 

<팔각당>

 

<식물원>

 

 

<새우풀>

 

 

<귤나무>

 

 

<얼룩자주달개비>

 

<군자란>

 

 

<실내정원>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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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앞길이 전면 개방되었습니다. 2017년 6월 26일부터라고 하는데요. 지금까지는 제한적인 개방이었죠. 즉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바리케이트를 쳐서 통행을 막아왔던 것인데요. 이제는 그러한 제한이 모두 풀렸습니다. 청와대 주변에 있는 5개의 검문소도 평시 검문을 하지 않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앞길이 그동안 막혀 있었던 이유는 1968년에 발생한 1.21사태의 영향이 큽니다.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죠. 김신조 사건은 북한군 31명이 청와대를 습격을 기도한 사건으로 당시에 이들 일당은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지만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면서 총격전이 벌어져 미수에 그쳤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나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며 경찰과 접전을 벌였고 그해 소탕전에서 북한군 29명은 모두 사살되고 1명은 북한으로 도주하였으며 나머지 1명인 김신조는 생포했죠. 이 사건 이후에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청와대 앞길의 통행금지는 그동안 인근 주민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1988년 2월 노태우 전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상징적인 조치의 하나로 약 11km에 이르는 구간의 부분통행을 허용하고 청와대 경내 관광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요.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시간이 지나면서 검문검색과 경비수준이 올라가면서 개방 전의 수준과 다를 게 없이 되고 말았는데요.

 

  그러다 1993년 2월 문민정부시절을 맞아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진입로의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앞길 통행을 허용하게 됩니다. 다만 야간통행만은 제한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청와대 경내관람도 대정원앞, 수궁터로 확대되었습니다.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 때는 청와대 경내관람에서 칠궁을 포함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본관앞 녹지원까지 확대하는 등 그 개방의 범위를 점점 넓혀왔지요. 또 2006년 9월 이전에 막혀 있던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을 개방했고 2007년 4월에는 청와대 뒤편에 위치한 북악산 성곽로를 40년만에 개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을 위한 청와대 앞길은 서서히 개방의 물결을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이제서야 24시간 전면개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앞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아왔고 경복궁을 관람하는 손님들도 북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와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

 

<인왕산>

 

<경복궁의 북문>

 

<청와대>

 

<겨울>

 

<청와대 앞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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