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으로 3월 6일 무렵이면 24절기의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 듭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죠. 겨울철 그 춥던 대륙성 고기압은 약해지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따스함과 추위가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리고 초목의 싹이 돋아나며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나 도룡뇽의 알을 건져다 먹기도 했죠.

  또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합니다. 특히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하는데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재를 탄 물그릇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했습니다.

 

 

 

  경칩에는 보리의 싹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그 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또 고로쇠나무를 베어 그 수액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전남 구례의 송광사나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하죠.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춘분이 되어야 물이 오르지만 남부지방의 나무들은 다소 일찍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경칩은 연인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옛 선남선녀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 은행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나누어먹었다고 합니다. 세조 때 강희맹이 쓴 사시찬요에 보면 은행 껍데기에 세모난 것이 수은행이고 두모난 것이 암은행인데 대보름날 은행을 구해 두었다가 남편과 아내가 경칩날 각각 먹었다고 합니다. 또 처녀 총각들은 경칩날 밤이 되면 동구밖의 은행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정을 다졌다고 하네요.

 

  꽃 피고 잎이 날 때면 추위가 오기도 합니다. 이때 추운 것은 날씨가 꽃과 잎이 피는 것을 샘한다고 하여 꽃샘 또는 잎샘이라고 하는데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설늙은이는 젊지도 아주 늙지도 아니한 조금 늙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 중늙은이 또는 반늙은이라고도 하죠. 삼사월에 꽃과 잎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가 중늙은이 얼어 죽을 정도로 매우 춥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리누름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는 말도 있는데 보리누름이란 보리가 누렇게 익는 철을 가리킵니다.

 

 

 

초후에는 복숭아가 꽃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꾀꼬리가 울며

말후에는 매는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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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4대 명절은 설날과 추석, 한식,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한식과 단오는 점점 잊혀져가고 있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하던 한식,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던 단오였는데 말이죠. 그 대신 아직 전통적인 풍습이 남아있는 명절이 있으니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은 정월에 맞이하는 보름날로 음력 1월 15일입니다.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달력이죠. 달은 29.5일을 기준으로 차고 기울면서 모습이 변하는데요. 음력에서는 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날을 초하루라 하고 완전히 둥근 때를 보름날이라 합니다. 보름이 지나면 달은 다시 기울기 시작하여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을 한 달의 마지막인 그믐날이라 하죠.

 

<쥐불놀이>

 

  보름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입니다. 전국 곳곳에서는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갖가지 민속놀이와 풍속을 즐기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마을제사(동제), 달맞이 소원빌기, 더위팔기, 다리밟기, 액막이 연날리기,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등이 있습니다.

  이날은 음식도 빠질 수 없는데요. 다섯가지 오곡으로 오곡밥을 지어 먹고 열가지 나물로 반찬을 만들며 단단한 견과류를 입에 넣고 부럼깨물기를 합니다. 차가운 술을 남녀노소가 함께 마시는 귀밝이술, 솔잎을 깔고 떡을 쪄먹는 솔떡도 대보름 음식입니다.

 

<견과류와 나물>

 

  오곡밥이나 약밥, 찰밥을 짓는 이유는 평소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을 지어 의례에 엄중함을 더하고 다같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 곡식이 어우러진 오곡밥은 영양면에서도 뛰어난 음식이죠. 팥은 칼륨이 풍부하여 붓기를 빼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으며 콩은 단백질이 풍부하죠. 조는 이뇨작용으로 소변배출을 돕고 쌀로는 채우지 못하는 무기질을 제공합니다. 수수는 방광의 면역기능을 높이고 항산화작용을 돕습니다. 찹쌀은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서 노약자가 음식을 섭취하는데 도움을 주죠.

 

<달집태우기>

 

  오곡밥과 함께 먹는 나물반찬도 건강에 좋은 음식입니다. 동국세시기에는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꼭지, 가지껍질과 같은 각종 채소를 말려둔 것을 진채 즉 묵은 나물이라 하며 정월 대보름에 삶아서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대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죠. 이는 일년동안 아무 탈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의미입니다. 부스럼은 피부질환인데 견과류에에는 피부에 좋은 영양분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풍습입니다. 또 견과류를 깨물면서 치아건강을 점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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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과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우수가 있습니다. 양력으로는 2월 19일경인데 음력으로는 대개 정월에 드는 시기죠.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것이니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음력에서 정월은 계절상 봄에 해당됩니다.

 

  우수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슬슬 녹아 없어짐을 이르는 뜻으로 우수의 성격을 잘 표현해준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에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고 했으니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는 법입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우수 이후 15일을 세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었는데요. 첫 5일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지요. 우수 무렵이 되면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리므로 수달은 때를 놓칠세라 물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에는 풀과 나무에 싹이 트는 것이죠.

 

  산림경제에 보면 과일나무는 음력 정월 상순에, 그러지 못하면 이월 상순에 심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과일나무는 위로 뻗어가는 기운을 담고 있죠. 그러니 달이 차 오를 때 심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에 맞춰 어린 나무를 구해야 하는데 장에 나오는 묘목은 품종개량을 많이 한 나무들입니다. 열매를 굵게 한 해라도 빨리, 더 많이 달리게...그러다 보니 나무가 야성을 잃고 온실속의 화초처럼 바뀌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법대로 가지치기를 하고 꽃을 솎아 주고 열매도 솎아야 합니다. 그래도 병이 많고 벌레의 피해도 크죠. 열매를 많이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나무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농사꾼 장영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 나무르 심어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절기. 우수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봄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몸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온실속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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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최대명절 - 설날

2018. 2. 16. 07:00 from 일상생활

  설날은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인 것이죠. 그래서 설은 음력 초하룻날의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옛 기록에 보면 원일, 원단, 원정, 원신, 원조, 정조, 세수, 세초, 연두, 연수, 연시 등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개 한 해의 첫 날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설날을 구정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구정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것으로 새로운 설이 아닌 오래된 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우리나라 조상들의 시간관념은 오래전부터 음력에 근거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1896년을 기하여 공식적으로는 양력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일제에 의하여 양력설이 도입되는데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게 되었죠. 이에 반하여 피식민지인 한국인들이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가 전통 설을 지칭한 구정이라는 명칭은 해방 후 한국정부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그 사용이 장려되기도 하죠. 음력설은 해방된 뒤에도 대다수 국민들이 새해를 맞고 차례를 모시는 날이었음에도 정부는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을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관공서의 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음력설을 설날로 개칭하고 총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게 됩니다. 이로써 전통 설은 구정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구정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설날 아침에는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어른들은 설날 아침에 예복을 차려입고 사당이나 대청에서 4대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차례를 지냅니다. 그리고 성묘를 하고 돌아오죠. 설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함께 모여 떡국을 먹습니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의 어른들과 친구끼리도 서로 집으로 찾아가서 세배를 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이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이라고 하는데 덕담의 표현은 항상 과거형으로 하는 특징을 갖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덕담의 형식이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축원으로 변하였죠.

  어린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오며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하는 음식을 세찬, 술은 세주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개인의 신수를 점쳐보기 위하여 토정비결을 보기도 하죠. 또 일반적으로 3일이 지나면 어린 아이들이 보름날까지 연날리기를 하다가 14일날 저녁에 줄을 끊어 날려 버리면 그 해에 그는 액을 날려 버린다고 생각하여 이를 액막이연이라 불렀습니다.

  설을 지내고 3일째 되는 날에 일반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마을고사 또는 동제라고 하는 공동제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농악을 치고 고사를 지내는 지신밟기를 하였지요. 이때 집집마다 조금씩 쌀을 내 놓는데 이것은 마을의 공동자산으로 삼았습니다. 마을제사와 지신밟기는 새해를 맞아 공동의 생활공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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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立春)은 새해의 첫째 절기입니다. 2018년 1월 5일은 소한절기, 1월 20일은 대한절기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음력으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음력으로 정월에 드는 절기를 처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생각했으니 계절로 보아도 처음의 의미가 있네요. 그래서 24절기 중의 첫째 절기로 입춘을 칩니다.

 

  입춘은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습니다. 입춘이 되면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에서는 기복적인 행사로 입춘축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죠. 입춘축을 달리 춘축, 입춘서, 입춘방, 춘방이라고도 합니다. 입춘축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서 붙입니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하지만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는 붙이지 않습니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cm, 세로 70cm 내외의 한지를 두 장 마련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외에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 자와 호(虎) 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합니다.

 

  입춘축으로 쓰는 글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개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주로 씁니다. 옛날 대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라 하였지요. 입춘은 새해에 드는 첫 절후이므로 궁중과 지방에서 여러 의례를 베풀었습니다. 입춘하례는 백관이 대전에 가서 입춘절을 축하하면 임금이 그들에게 춘번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들에게는 휴가를 주는 예식입니다. 또 예기에 의하면 궁중의 역귀를 쫓는 행사인 대나의 때 토우를 만들어 문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기운을 보낸다 하였으니 고려 때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었죠. 함경도에서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니는 의례를 가졌는데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겨울의 추운 기운을 내보내는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한 목우라는 풍습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굿놀이를 행했는데 이 놀이는 농경의례에 속합니다.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입춘축이 벽사로 붙여짐을 알 수 있습니다. 전북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춘련 붙인다 하고 이를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또 써 붙이지 않고 그냥 글귀를 외워도 좋다고 했습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방악한다 또는 잡귀야 달아나라 고 써 붙인다고 하네요.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는 이날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안 곳곳에 뿌려 벽사를 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이날 보리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보리밥을 해먹으며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이 일년에 두 번 들면 소금 시세가 좋다고 했죠. 함남 북청에서는 이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하여 무를 먹고 잡곡밥은 먹지 않고 흰쌀밥을 먹으며 이날은 나이 먹는 날이라 해서 명태순대를 해 먹었습니다.

 

  대한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 또는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라 하고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에는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라고 말했죠. 이것은 입춘 무렵에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이 생겼고 격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고 했지요.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기에 이날을 기리고 닥쳐오는 일년동안 대길, 다경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옛날부터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더러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절일로서는 기능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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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영가족 :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24번째 절기가 대한입니다. 한자말을 풀이하면 큰 추위라는 뜻인데요. 대한은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 있어 한 해를 매듭짓는 절후이기도 합니다. 양력으로는 1월 20일 무렵이죠.

 

  원래 겨울 추위는 입동에서 소설, 대설, 동지,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집니다. 소한을 지나 대한에 이르면 가장 춥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기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다소 달라서 소한 무렵이 가장 춥습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라거나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까 대한이 소한보다는 덜 춥다는 인식이 우리 조상들에게는 있었나 봅니다.

 

  전통 달력에서는 대한의 마지막 날을 겨울을 매듭짓는 날로 보고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했지요. 이 날이 지나면 24절기의 새로운 시작인 입춘이 돌아오니까. 또 제주도에서는 대한 뒤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인 1월 25일에서 2월 1일 사이 일주일간을 신구간이라고 하여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손질을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뭍에 사는 이가 회사에서 발령이 나 이사를 가야 하는데 신구간이 아니라 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초후에는 닭이 알을 낳고

중후에는 나는 새가 높고 빠르며

말후에는 못물이 단단하게 언다.

 

 

  대한 끝에 양춘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한이라는 큰 추위의 고비만 넘기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 속담이 인용되는 의미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죠.

 

  대한이 지나면 입춘, 우수, 경칩, 춘분으로 이어지는 절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나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고비를 현명하게 극복하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속담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는 속담으로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면 행복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Posted by 호영가족 :

  2018년 새해가 시작된지 보름이 지났네요. 여기서 새해의 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시속 10만 7320km의 빠른 속도로 1년에 한 바퀴씩 돌죠. 이를 지구의 공전이라고 합니다. 태양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그 방향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변하고 1년 열두달 365일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양력으로는 365.25일이고 음력으로는 354일이죠.

 

  양력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인데 1년이 365.25일이기 때문에 4년마다 윤년을 두어 366일로 정합니다. 그래서 4년마다 2월이 29일이 되는 것이죠.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입니다. 1년을 열두달로 하고 열두달은 29일의 작은달과 30일의 큰달로 만듭니다. 2017년의 경우 음력 1,3,5,7,9월은 작은달이고 음력 2,4,6,8,10,11,12월은 큰달입니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면서 동시에 시속 1670km의 빠른 속도로 하루에 한번씩 지구 스스로 한바퀴 도는데 이를 자전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이 뜨고 지는 낮과 밤이 생기는데 사실은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2018년 무술년은 황금개띠해라고 합니다. 10간의 무(戊)는 노란색, 12지의 술(戌)은 개에 해당합니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4000여 종의 포유류와 1만여 종의 새 가운데 익나이 길들이는데 성공한 것은 개를 포함해 10여 종에 불과합니다. 현생인류는 개와의 협업으로 지금까지 생존해올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개띠라고 하면 58년 개띠가 연상됩니다. 1958년 무술년에 태어나 올해로 환갑을 맞는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세대이기도 하죠. 서정홍 시인은 58년 개띠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없고..."

 

  그들 개띠는 베이비붐의 절정에 태어났기에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고입본고사가 폐지되는 입시제도 변화로 혼란을 겪었으며 대학에 들어가는 데도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둟어야 했고 힘겹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긴급조치와 10.26을 지켜봐야 했죠. 넥타이부대로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이들입니다. 60갑자를 한 바퀴 돌아 올해 환갑을 맞은 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올해 3만달러시대를 여는 성공스토리도 나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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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1월 5일 - 작은 추위라는 뜻의 소한이었습니다. 소한은 동지와 대한 사이의 절기로 양력 1월 5일경에 옵니다. 절후의 이름으로만 보면 대한 때가 가장 추울 것 같지만 실제 소한 때가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에 가장 춥습니다.

 

  소한은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나타나는 절기죠. 소한 무렵은 정초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때 무엇을 했을까요? 농사가 산업의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절기는 농사의 시기를 알려준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소한 절기에서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달동안 혹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출입이 어렵기 때문에 땔감과 먹을거리를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 두었던 것이죠.

 

 

 

  옛 말에 소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소한보다 대한이 더 추워야 마땅해보입니다만 24절기는 중국을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고 대한에 이르러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쯤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른 것이죠.

 

  비슷한 상황에 사용되는 말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 얼어 죽는다.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어도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추운 소한은 있어도 추운 대한은 없다. 소한이 대한 잡아먹는다. 소한이 대한의 집에 몸 녹이러 간다.

 

  소한 때가 가장 추울 때이므로 춥지 않다가도 소한 떄가 되면 추워진다는 의미로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속담의 의미를 풀어보면 일이 잘 되거나 못 될 때는 반드시 어떤 연유가 있다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필연적인 결과 또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그 일과 딱 들어맞는 어떤 결과가 있을 때를 빗대어 이르기도 하는 말입니다. 또 일이 반드시 순서대로만은 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죠.

 

  비슷한 속담으로 아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재수 없는 놈은 고양이 꼬리를 밟아도 호랑이로 둔갑한다. 등이 있지요.

 

Posted by 호영가족 :

  양력으로 한 해의 첫 번째 날을 새해 또는 신정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1895년은 을미개혁으로 유명한 날이죠. 조선 고종은 한마디합니다. "역법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하라.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

 

  그리하여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됩니다. 이때부터 양력 1월 1일을 설로 삼고자 하는 관과 우리민족의 고유한 전통에 입각해서 음력 1월 1일을 설(新正)로 삼고자 하는 민중들의 대립은 시작되죠.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신정이 강압적으로 장려됩니다. 해방 이후에도 국가는 신정을 제도적으로 지원합니다.

 

  해방이후에는 1989년까지 신정과 그 후 이틀을 합하여 총 3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1984년까지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니었던 점 그리고 1985년부터 1988년까지는 민속의 날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단 하루 공휴일이었죠. 신정에 대한 관의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1986년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83.5%는 여전히 음력설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법과 제도가 아무리 신정을 장려하더라도 이미 관습화되고 문화로 변한 이상 음력설의 강인한 전승력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결국 1989년부터 음력설을 전후한 3일간이 공휴일로 제정되었고 신정연휴는 2일로 축소되었지요. 그후 1998년에 공휴일이 조정될 때 신정 다음날은 한글날, 국군의 날 등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음력설로 정착되어 가고 있지요.

 

  일본은 1872년에 태양력을 도입한 후 이제 더 이상 음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을 국민의 축일이라는 명칭으로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요. 중국은 1912년에 양력을 도입했지만 이날은 하루만 쉬고 음력 1월 1일부터 4일까지를 춘절 연휴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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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영가족 :

  24절기 중에서 스물두번 째 동지가 오늘입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양력 12월 22일경에 들죠.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 또는 작은설이라고 했습니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지요.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역경에도 복괘에 해당하는 11월 동짓달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죠.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므로 동지를 설로 여겼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지는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이 지나면 하루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져서 하지가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양의 기운이 싹트는 출발점이었으므로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여겼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나라는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팥죽은 찹쌀로 경단을 빚은 후 팥을 고아 만든 죽에 넣고 끓인 것이죠. 이때 새알만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고 부릅니다. 떡국이 설날 음식이라면 팥죽은 동지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예로부터 질병이나 귀신을 쫓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팥죽에는 단백질, 지방, 당질, 회분, 섬유질 등과 비타민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신장병, 각기병에 효능이 있으며 또 부종이나 빈혈, 숙취해소 등에도 좋습니다. 설탕에 소금을 약간 가미하면 단맛이 훨씬 강해지는데 우리 조상들은 단팥죽에 소금을 넣어 단맛을 살렸죠. 팥에는 녹말 등의 탄수화물이 50%, 단백질이 20%, 그외 지방, 당질, 회분, 섬유질 등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팥죽의 풍습을 통해 일년 동안의 만수무강을 기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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