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면은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39-1에 위치한 대중음식점입니다. 3대째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메밀국수 전문점이죠. 유림면은 1960년 현 운영주의 외고모할머니가 명동에서 은하라는 상호로 창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1대 대표였던 고모님은 손재주가 좋았다고 하는데 자손이 없어서  조카였던 2대 대표 염숙환씨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1980년 종로로 가게를 이전한 후 정양으로 상호를 변경했는데 1986년에 현위치로 다시 이전하면서 상호를 유림면으로 정했다 합니다. 2004년에 가게 운영을 3대 대표 염숙환씨의 딸 김민경 씨가 이어받으면서 3대가 되었네요.

 

  유림면의 대표메뉴인 메밀국수는 봉평산 메밀로 만든 면을 수분함유량 70~80%의 반건조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담아 내옵니다. 순메밀의 거친 식감을 완화하기 위하여 메밀에 밀가루를 적정 비율로 혼합해서 찬물 반죽으로 면을 뽑는다고 하는데요. 유림면은 최고의 맛을 얻기 위해서 5월에 잡힌 멸치만을 사용하여 국물을 우리고 신안 비금도의 천일염으로 메밀장의 맛을 냅니다. 살짝 달면서 깊고 차분한 국물에 계란과 큼직하게 썬 어묵, 쑥갓, 유부 등을 웃기로 얹어 내오는 냄비우동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라 하는군요.

 

  일일 평균 고객수는 700~1000명 정도이며 긴 업력만큼이나 오랜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합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유림면이 등장한 뒤 해외관광객들의 방문이 늘었다는데... 1960년에 창업해 3대를 이어온 메밀국수 전문점 유림면은 서민들의 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유림면>

 

<메밀국수 전문점>

 

<메밀국수>

 

<달콤한 맛이 전해온다>

 

<서울미래유산>

 

<50년전통 유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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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

 

  안동장(安東莊)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입니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4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1948년에 개업하여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식당이죠. 상호의 안동은 중국 산둥성에 있는 지명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가게 안에는 오래 전에 사용했던 안동장이라는 현판이 남아 있습니다.

 

  과거 전쟁을 피해 중국에서 인천으로 건너온 창업주가 화교가 운영하던 중식당에서 기술을 익혀 1948년 지금의 피카디리 극장 근처에서 개업한 것이 안동장의 시초라고 합니다. 1950년 종로 일대의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창업주의 아들이 대를 이어 안동장을 운영하게 되었지요. 현재 안동장의 운영주는 창업주의 손자로 3대 대표를 맡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동장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956년 준공 당시에는 지상 3층이었던 건물을 1986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상 5층으로 증축하였습니다. 안동장의 주메뉴는 마늘과 굴을 듬뿍 넣은 굴짬뽕이며 곱게 다져 양념한 새우살을 빵 사이에 넣어 튀겨 만든 멘보샤도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안동장의 일일 평균이용객은 500명 정도로 대부분 인근 주민들과 직장인들입니다.

 

<을지로>

 

<안동장>

 

<간짜장>

 

<굴짬뽕>

 

<이 집의 주메뉴가 굴짬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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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에 들어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순대국이 이젠 아무곳이나 흔하게 만나는 음식으로 변했습니다. 큰 도로변, 도시의 작은 골목길에도 순대국집이 있죠.

  간식으로나 먹던 순대가 국물속에 퐁당 몸을 던지면 순대국이 됩니다. 그런데 순대국 안에는 순대만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족보를 알 수 없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습니다. 사실은 이 족보없는 돼지고기가 시선을 끌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순대는 왠지 소금에 찍어먹어야 제맛인데 국물속으로 들어가면 느낌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순대국밥은 대구의 따로국밥처럼 국 따로 밥 따로 주는 것이 아니라 국과 밥이 하나의 그릇속에 들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당마다 개성이라고 해야겠지요. 순대국밥에 부추를 듬뿍 넣고 쫑쫑 썬 청량고추를 넣어 밥을 말면 밥알이 살아납니다. 순대 국밥 한 수저 듬뿍 떠서 겉저리 김치 걸쳐 한 입 넣으면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맛이 됩니다.

 

  강원도 철원땅에 맛있는 순대국집이 있다고 하여 찾아갑니다. 시골여느 음식점과 다르지 않게 작은 규모의 식당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도 있는데 우리는 창문가에 자리를 잡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순대와 고기가 들어간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붓습니다. 그리고 깍두기 한 그릇과 함께 담아내 옵니다. 식사가 참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식의 수많은 반찬종류를 보다가 순대국 한 그릇은 허전한 느낌도 있지요. 하지만 맛은 깍두기 하나로 충분합니다. 원래 순대국이 그렇게 먹는 음식입니다. 순대국밥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주인아주머니는 뜨거우면 먹기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적당히 식은 국물을 넣은 국밥입니다.

 

  순대국 한 그릇 겨울이면 제격입니다. 속이 살아나는 느낌이죠. 제가 식당안 이곳저곳을 사진찍고 있으니까 주인아주머니는 별 걸 다찍는다는 표정입니다. 이름난 맛집이라서요. 일부러 사진찍으러 왔습니다. 했더니 겸손하게도 손사레를 칩니다. 주인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소문은 문혜리를 넘어 철원을 넘어 제가 살고 있는 곳까지 퍼졌다는 것을 아주머니는 모릅니다. 열심히 순대국만 만들어 오셨을테니까요. 그 맛에 반하여 단골은 하나둘 생기고 맛은 멀리 퍼져나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원식당>

 

<식당내부>

 

<메뉴>

 

<깍두기>

 

<순대국>

 

<단조로운 국밥 한 그릇>

 

<문혜초교사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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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렁설렁 먹기 좋아 설렁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설렁탕이 오랫동안 서울 사는 서민들이 가장 즐기는 바깥음식이었고 타지 사람들도 먹고 싶어 했던 서울의 명물이었습니다. 서울을 경성이라고 부르던 시절부터 말이지요.

  1932년경의 근대잡지인 별건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옵니다. 서울 명물 설넝탕이 어떠한 것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콩멍석만 한 김 서리는 가마속에 소대가리가 푹 솟아 있다. 그 옆에는 죽어서도 악착한 희생을 당하였다는 듯이 소 해골바가지 서너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신사 양반들이 모지라진 숟가락으로 뚝배기 바닥을 달그락달그락 긁으면서 국물을 훌훌 마시며 하는 말씀, 어- 이제 속이 풀리는군! 소대가리 삶은 물 먹어 저렇게도 좋을까. 서울의 모든 것이 다 좋으나 설넝탕만은 악인상을 준다. 무심결에 외치는 소리, 오- 소대가리 서울이여!

 

  그 설렁탕의 역사를 대변하는 종로이문설렁탕이 지금도 건재합니다. 이문(里門)이라는 말은 세조의 명으로 마을 입구마다 위치한 방범초소를 가리킵니다. 그 방범초소가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지요. 운종가에서부터 인사동을 지키기 위하여 세워진 종로이문은 인사동 222번지로 옛 화신백화점 뒤쪽에 있었습니다. 예부터 이곳은 이문이라는 상호를 붙인 음식점이 많았죠.

  100년이 넘는 세월을 담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알려진 이문설렁탕입니다. 1904년에 문을 열었다니 업력이 대단합니다. 그렇다면 장군의 아들 김두한도 드나들었겠군요. 김두한 뿐이겠습니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부통령 이시영, 국문학자 이희승, 남로당 당수 박헌영 등 현대사의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종로거리를 활보하면서 이문설렁탕을 찾았다고 하네요.

 

설렁탕은 혀, 도가니, 머릿고기, 양지머리, 지라 등 소의 온갖 부위를 푹 고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맑은 국물입니다. 여기에 밥을 말아먹으면 국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온 일본통신사 기자가 국밥은 밥을 마는 것이 맛있는지 따로 먹는 것이 맛있는지 물었다는데 이문설렁탕은 예나 지금이나 밥을 말아서 내줍니다. 거기에 깍두기를 곁들여 한 그릇 먹고 나면 설렁탕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문설렁탕>

 

<덜어먹는 김치>

 

<깍두기>

 

<파>

 

<분주한 주방모습>

 

<밥을 만 설렁탕>

 

<한 상은 매우 단조롭다>

 

<메뉴>

 

<종로거리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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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대룡산 막국수

2017. 11. 30. 11:49 from 맛있어요

춘천 대룡산 막국수

 

  낭만과 추억을 안겨주는 도시가 춘천입니다. 우리말로 봄내라고 하죠. 춘천의 대표적인 음식이 막국수와 닭갈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춘천막국수는 순 메밀가루를 반죽해 국수틀에서 뽑아낸 면을 곧바로 삶아내 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습니다.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려서 식초, 겨자, 육수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지요. 춘천막국수는 음식맛 만이 아니라 피부미용과 성인병 예방에도 크게 한몫을 하는 데다 음식값 부담도 적으니 그 인기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메밀은 원래 추운지방의 곡식으로 북쪽지방 사람들의 음식재료였지요. 6.25전쟁 이후 북녘 실향민들이 정착한 춘천은 영서지방에서 재배한 메밀을 집산 제분하는 중심도시가 되면서 막국수의 본산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시원한 육수에 말은 막국수는 여름음식으로 인식되지만 본래는 겨울에 즐겨먹었답니다. 화전민이나 산간농민들이 긴 겨울밤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야식으로 즐겨먹던 음식인 것이지요. 2017년 2월 현재 춘천에는 닭갈비와 막국수 업소가 393개에 달합니다.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비빔막국수는 육수를 조금 붓고 식초, 겨자, 설탕 등을 기호에 맞게 넣어 고르게 잘 비벼 먹으면 됩니다. 먹고 난 후에는 막국수 삶은 뜨거운 물을 그릇에 붓고 간장 등 간을 맞추어 잘 저어먹으면 소화에도 도움이 되고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물막국수는 더 간단한데요. 육수나 동치미 국물을 많이 붓고 식초, 설탕, 겨자 등을 넣어 먹으면 된다는군요.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대룡산 막국수>

 

<감자 서비스>

 

<김치>

 

<동치미>

 

<영양정보>

 

<상차림>

 

<막국수>

 

<착한가게>

 

  춘천시 동내면 신촌리에는 대룡산 산행의 거점이 되는 마을입니다. 이곳의 대룡산 막국수는 지금의 업주 부모가 1954년에 교동막국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6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시골마을의 조그만 막국수집이 2014년 중소기업청 소상공인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업소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군인들에게는 음식값을 할인해주는 군장병 우대업소이기도 합니다. 전화 033-26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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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돈까스 - 의정부 신곡동점에 가다

 

  돈까스는 일본에서 개발된 음식입니다. 일본은 한때 엄격한 불교 율법에 따라 육식을 금지한 시기가 있었는데 서양의 음식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육식을 더 이상 금할 수 없었으므로 이때 개발된 것이 돈까스입니다. 돼지고기를 밀가루로 쒸워 기름에 튀겨내면 육식이 아닌 듯 하면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발한 방식이었지요.

 

  의정부 신곡동에 왕돈까스 전문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갑니다.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정확히 입력해야 합니다. 의정부시 신곡로 45-20

식당이름은 홍익돈까스로군요. 식당앞에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인데 오후 2시 30분에서 4시 30분까지 튀김기름을 교체하는 시간이므로 이때는 잠시 문을 닫습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면 문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주문을 합니다. 왕돈까스는 기본이니까 하나를 시켰는데 두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로 큽니다. 두 사람이라고 2인분을 시키면 큰일날 양입니다. 그리고 해물볶음우동. 이것도 맛이 괜찮군요. 중국음식점의 간짜장 맛이랄까. 돈까스와 적절히 어울립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정신이 여기 음식에 깃들어 있군요. 맛있게 먹고 일어납니다.

 

<홍익돈까스 의정부 신곡동점>

 

<중랑천>

 

<주변은 아파트밀집지역>

 

<식당내부>

 

<말 그대로 왕돈까스>

 

<해물볶음우동>

 

<고구마롤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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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족발 - 그 시절의 보양음식

 

족발은 돼지의 앞뒷발과 관절 부위까지를 말합니다. 소는 우족이라 하는데 돼지만은 족발이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족이나 발이나 같은 말인데 같은 말을 두 번 연속 썼다는 것 아닙니까.

 

국어사전에 족발은 각을 뜬 돼지의 발 또는 그것을 조린 음식이라고 나옵니다. 소의 다리는 고급 보양식이라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족발은 그래도 좀 만만합니다. 그래서 우족보다 족발이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신기한 것은 족발이 참 맛있다는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음식이 있었다는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최근에 생긴 맛이라는 뜻이겠죠. 그 기원은 1960년대 중후반이라 합니다. 장충동에 족발집이 크게 성행한 것은 장충체육관과 장충단공원 덕분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체력이 국력이었던 시절 - 장충체육관에서 운동경기를 관람한 사람들은 장충동 족발집에서 건강음식 한 그릇과 술 한 잔 했을 것은 자명합니다. 특히 김일 선수가 활약한 레슬링 경기를 보고 나면 민족혼을 축하하는 자리에 으레 장충동족발이 놓였던 것이죠.

 

장충단공원과 남산도 여행객들이 잘 찾는 장소였는데 그 길목에 족발집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여가활동은 맛으로 마무리했는지 모릅니다. 장충동족발집은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자리잡으면서 그들의 음식문화가 발전한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집이든 원조라고 내세우면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 비슷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것 같습니다. 원조 1세대는 이제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운영을 못하고 자녀들에게 물려준 상태지만 영업은 장충동족발골목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맛을 논할 필요는 없겠군요.

오늘저녁 시장에서 장충동족발과 비슷한 족발 하나 사다 놓고 그 시절의 보양음식이라며 추억을 새기는 것도 좋겠습니다.

 

 

<장충체육관>

 

<원조라는 이름으로>

 

<갈색의 족발>

 

<야채쌈도 좋고>

 

<족발 한 상>

 

<계산해야져>

 

<장충동할매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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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이 멀다하고 주인이 바뀌는 음식점들과는 달리 한자리에서 몇십 년씩 음식맛을 지키며 성업을 이루는 전통음식점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음식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경남 거제군 동부면 신앙리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식당. 돼지족발전문인 이 음식점은 1906년부터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전통의 맛을 팔고 있답니다.

 

  서울에서는 1907년에 개업한 이문설렁탕이 단연 돋보입니다. 갈비탕과 설렁탕을 메뉴로 한 이 음식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요. 1930년의 용금옥 추어탕, 1940년의 안동장 중국음식점, 1948년의 하동관 곰탕 등도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동두천의 송월관이 대단합니다. 일일이 여러 곳을 찾을 필요없이 오늘은 송월관 이야기로 꾸며갑니다. 송월관은 해방전에는 한정식집으로 운영했지만 해방 이후 시어머니께서 갈비로 메뉴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생김새가 두툼하니 색깔과 크기가 시루떡처럼 생겼다고 떡갈비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전통의 맛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1945년이었지요. 전통의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그것은 떡갈비의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고 식당의 출발은 1920년입니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은 모범음식점은 물론 경기도 으뜸맛집으로도 이름을 올렸군요. 상당한 내공이 있지 않고서는 경기도 으뜸맛집이 되긴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송월관의 맛에 대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떡갈비는 오늘날에도 남녀노소가 꾸준하게 찾는 이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았습니다. 떡갈비는 동두천시의 대표맛으로 이름을 올릴 정도니까.

 

  전주태생의 강씨 소녀가 동두천으로 시집을 왔는데 650년의 전통을 가진 전주의 떡갈비라는 전통음식이 동두천으로 시집을 따라 온 것입니다. 며느리의 시어머니가 이가 좋지 않아 늘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자 며느리는 떡갈비를 생각하여 만들어 드렸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맛에 탄복하자 이웃에도 소문이 나고 이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맛을 볼 수 있는 식당에 접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죠. 동두천 떡갈비는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며느리의 효성이 떡갈비 식당을 발전시켰다고 생각되는 장면입니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네요. 

 

 

 

<송월관>

 

<경기으뜸맛집>

 

<실내>

 

<샐러드>

 

<김치>

 

<밑반찬>

 

<떡갈비 한 상>

 

<장독>

 

<식당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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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진은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에 소재한 대중음식점입니다. 1954년 지금의 교보빌딩자리에 고 안평순 여사가 개업하였답니다. 1970년경 현 대표인 이수련 씨가 미진을 이어오고 있는데 2010년 종로구 청진동의 재개발로 신축건물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입주하였지요. 이수련 씨가 병상에 있어 딸이 가게운영을 도맡음으로써 3대째 잇게 되었습니다.

 

  미진은 메밀전문식당입니다. 대표메뉴인 메밀국수는 다랑어와 멸치, 다시마, 무 등을 넣고 대대로 이어져 오는 미진만의 조리법으로 우려낸 육수에 100% 메밀가루로 뽑아낸 면을 담아 내옵니다. 육수는 담백하고 메밀면은 부드럽네요. 개업초기에는 메밀로 된 메뉴만을 취급하였으나 지금은 메밀과 궁합이 맞는 음식을 곁으로 내고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에서 공수해 온 통메밀과 속메밀을 반반 섞어서 만든 메밀묵밥과 속을 꽉 채운 메밀전병이 그 메뉴들이지요.

 

  처음 미진은 광화문 우체국이 마주보이는 종로통 대로변에 있다가 도로가 확장되면서 교보빌딩 후문앞으로 옮겨 10여 년을 보냈습니다. 현 운영주는 1970년부터 창업주에 이어 운영해 오고 있는데 청진동 일대에 대한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2010년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으로 이전해 재개업하였다고 합니다.

 

  초기 고객층은 노년층이 많았으나 TV에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직장인들과 젊은 고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 하는군요. 하루 평균 1000여 명의 손님들이 미진을 찾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식당을 찾았을 때도 식당앞으로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다행히 메밀국수라는 음식은 오랫동안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요.

 

 

<미진식당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

 

<차림표>

 

<육수>

 

<김치와 단무지>

 

<메밀비빔국수>

 

<냉메밀>

 

<메밀을 덜어서 육수에 말아먹는다>

 

<피맛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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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탕의 고장입니다. 설렁탕, 해장국 그리고 추탕이 바로 그것입니다. 종로의 이문설렁탕은 설렁탕의 역사에서 맨 위쪽에 이름을 올려놓았고 청진동의 해장국 전설은 바로 청진옥입니다. 그리고 추탕 즉 추어탕은 1932년에 문을 연 용금옥이라 할 만합니다.

 

  식당의 역사만으로 그 등급을 논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식당은 무언가 충실한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932년 중구 무교동에서 창업주 홍기녀씨가 개업한 이후 2대 문수정씨가 이어받아 현 위치인 다동으로 이전했고 3대 신동민씨가 대를 이어 현재까지 운영을 해오고 있는 용금옥은 서울 추탕의 대명사죠.

 

  서울에서는 추어탕이라고 하지 않고 추탕이라 부릅니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그냥 통마리를 넣는 것도 특징인데 남도식과 구별됩니다. 남도식은 곱게 갈아 체 내려 뼈를 추려내고 만드는 것인데 사람들에게는 통마리보다 곱게 갈아서 탕으로 먹는 것이 더 익숙한지 요즘은 통째로 먹는 경우가 밀려나고 있지요. 서울식의 또 다른 특징은 호되게 매운 맛이라 하는군요. 보통 산초라고 하는 초피가루는 추탕의 매운맛을 지지하기 때문에 얼얼하게 매운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이 한창일 때 북쪽 대표단 중의 한 사람이 남쪽 대표부에게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화제가 되었답니다. 아마 서울에서 살다가 월북한 인물이었을텐데 이 발언이 신문에 크게 소개되면서 용금옥은 사람들의 입담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대화가 한창이던 때 북한의 연형묵 총리는 서울에 와서 이틀 연속으로 용금옥의 추탕을 먹었더랍니다. 그러니 서울의 용금옥은 예사로운 식당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추어탕 전문식당이자 서민들의 음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용금옥에서 서울식 추탕 한 그릇 했습니다. 전 남쪽지방에서 살아온 탓에 남도식을 즐겨 먹었는데 서울식 추탕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느껴졌다고 해야 겠군요. 오늘날 서울시에서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입니다.

 

 

<다동의 용금옥>

 

<메뉴>

 

<용금옥의 역사>

 

<김치>

 

<나물>

 

<실내>

 

<추탕 한 그릇>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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